사무실 과장의 갈굼에 발끝의 스트레스가 머리로 올라오는 기운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예, 다시 보고 올리겠습니다.” 라는 말을 마치고, 서류는 내 책상에 던져 놓고, 후다닥 복도 화장실 옆, 통유리 흡연실로 달려갔다.

타르 0.6mg 니코틴 0.5mg의 말보로 라이트를 깊게 빨았다.

“흡~~ 후~~”

니코틴이 두뇌를 비집고 들어가 스트레스를 물리쳤다.

창 밖에는 스산한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회사생활 3년차. 뭐 대단한 영광은 아니더라도,

남들이 썩 부러워 할만한 직장에 취직을 했다.

 

갑자기 내가 이런 생활을 꿈꾸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스트레스나 힘들다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얼마전에 본 [아빠는 현금인출기가 아니야. 잠, 일, 술 세대의 이야기]라는 책이 생각났다.

책 내용은 금속노조 교육국장인가 하는 사람이 쓴 현재 한국의 노동운동과 자본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주였다.

 

하지만 책 제목에서 보이듯이 우리의 노동자들은 자고, 일하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 먹는 것 말고는 하는 것이 없다는,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채 하루하루를 사는게 아니라 하루하루를 버티고,견디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연애시대]에서 감우성이 했던 그말처럼.
나는 항상 주말을 기다리며, 또 내일의 고난을 위해 오늘 밤을 줄기자며 술을 마셨다. 3년간의 회사생활 동안 찾은 목표라고는 적당히 괜찮고, 결혼할만한 여자를 찾는 것 밖에 없었다.

 

언제부터 꿈을 꾸지 않게 되었을까?

지금의 내 직장도 목표나 과정의 일부였었지 꿈은 아니었다.

꿈은 그런 “직장”과는 조금 달랐다는 것이 불현 듯 생각났다.

욕심 내지 않아도 버티다 보면 대리를 달 것이고, 과장도 될것이니까. 크게 안달내어 봤자, 1~2년 빨리 사는 것 밖에 없는 삶. 삶의 목표나 꿈이라고는 연애나 결혼, 서울에서 집사기, 자식 좋은 대학 보내기(이런 것도 아주 소중한 삶의 조건들인 것을 부정하진 않는다.) 밖에 없다.

연거푸 3까치를 들이 피던 담뱃불을 정리하고 사무실로 돌아와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검색창에 자연스레 “세계정복”이라는 단어를 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한번 피식 웃고, 다시 일을 했다.

 

저녁에 사무실 회식 자리에서 언제나 그렇듯이, 폭탄이 몇잔 돌고, 고기가 지글지글거렸다.
밤은 깊어져가고, 내 정신도 몽롱해져가고.내일 출근 때문에 2차에서 정리하고 나오면서 부장한테 인사했다.
배나와서 셔츠구멍사이로 런닝셔츠가 보이고,이짓저짓 배려심 없는 말들을 토해내던, 심성은 그럭저럭 순한 우리 부장.

저 모습이 내가 꿈꾸던 미래였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랑 맥주를 쑤셔넣어서 더 빵빵해진 내 복부가 오늘따라 나이들어보였다.

 

어린 시절 아마 거창한 세계정복이나, 우주정복 같은 것이 내 꿈은 아니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때인가 꿈을 적어내라고 하면, 남들은 외교관, 판사, 의사, 과학자 같은 것을 잘도 적어냈었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꿈은 축구선수였다. 정확하게는 펠레가 되는게 꿈이었다.

지구반대편의 나라에서 태어난 어떤 사람이, 전파라는 문명의 이기를 타고, 한국이라는 곳이 있는지는 알겠지만, 한국말은 “안녕하세요”도 하지 못할 그 브라질리안의 몸짓에 난 그냥 버럭 가슴이 뛰고 말았다.

7만 관중의 적막과, 그의 슈팅, 그리고 60억의 환호.

난 누군가의 가슴을 뛰게 해주고 싶었던거 같다.

 

그 다음의 꿈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자후기 같은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단편집인지, [태엽감는 새]였는지, [댄스댄스댄스]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저자 후기의 문장이 내 평생 꿈같은 느낌의 목표가 되었다.

 

“지금 내가 쓰는 이글이 모든 사람들이 공감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다행히 출판이 되어서 저 지구 반대편의 어떤 소녀의 책장에 이 책이 꽂혀 있고, 그 소녀가 잠들지 못하는 새벽녘에 작은 위안이 된다면 그것만으로 난 계속 글을 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라는 느낌의 글이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철없던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 다큐멘터리를 봤다. 마리화나, 맥주, 누드, 음악, 젊음, 혁명, 타락과 자유의 그 중간 어느 지점에서 진행되었다던 2박 3일의 영상 기록들 중에서 지미 핸드릭스가 기타하나로 연주했던 ‘God Bless America’ 연주 장면은 나에게 이데아적인 순간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많은 환상들이 깨져 나갔다.

세계 대통령이라던 UN 사무총장도 그냥 비행기 타고 다니는게 일인 사람이고, 거대한 국제정치에서 단순한 희망과 인류진보의 상징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단한 세계평화는 UN 사무총장이 만드는 것도 아니고, 일국의 대통령이라는 사람도 고귀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포털의 이미지들과 TV의 영상들은 환상을 심어주지만,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내가 가진 그 강열함은 여전히 내 속에 남아있는 것일까 고민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계속 “무엇을 할것인가”가 되뇌였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서 꾸역꾸역 사직서를 썼다. 펠레가 ‘펠레의 저주’라는 우스꽝스러운 케릭터가 되어버렸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해변의 카프카>이후로 변해버렸다고 툴툴거리고 있지만, 그 순간들이 내 속에 들어온 이후 내것이 되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내 맘속에 어딘가 한켠에 예전부터 강열한 무엇인가로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이 서른에 내가 세상을 향해 “그래도 나 스스로 대단하다고 느낄만한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라고 하면서 내 목소리의 세상에 말할 수단은 지금 쓰고 있는 종이 한 장 밖에 없다.

사직서.

지난 3년간 아침출근, 저녁퇴근, 가끔야근, 주5일제, 혹은6일 위대함과 그 결과로 마련한 전세 원룸 하나가 보였다.

무엇을 할지 모르겠지만,

몇 개월 이후에 재취업을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내일 당당하게, 남들이 파티션의 작은 책상위에 앉아있을 그 시간에 사각형의 건물을 나설수 있다면, 조금은 세상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

 

우리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사는게 아니라 버티어가면서 순간순간의 고난과 상처에 대해서 감정의 위안만을 삼키는 시대에 살고 있다.

목숨을 거는 전쟁이 아니라, 지리한 일상과의 전쟁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 하루하루 패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주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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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산책자 2010.04.07 2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안.

  2. 2010.04.09 04: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2010.04.29 14: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